한국 미술 시장의 개척자를 만나다_두손갤러리 김양수 대표

월간민화 7월호 2023
​서주희 문화캐스터

서주희 문화캐스터가 만난 문화예술인 ⑥

한국 미술 시장의 개척자開拓者를 만나다 ㅡ두손갤러리 김양수 대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고유하게 발달되어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자신 만의 특성을 제대로 찾아내 그것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면 그것이 비범한 성과를 내게 되고 비로소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추게 된다. 오늘날의 예술가 특히 미술작가가 말이나 글보다 자신의 작품으로 평가 받듯이 우리 문화를 애정하는 마음으로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온 두손갤러리의 김양수 대표는 반평생이 넘는 인생을 한국 미술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한국의 전설적 아트 컬렉터', '화상畵商', '1세대 갤러리스트', '거장' 등 그를 근사하게 표현하는 수식어는 많지만 그는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긴 한국의 문화가 이 시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마중물의 역할을 하는 한국 미술 시장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1984년 정창섭 회고전 오프닝_왼쪽부터 이우환, 김양수, 박서보

몰입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나는 미술대학을 나왔지만 졸업한 뒤 붓 한 번 잡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고미술상을 시작으로 미술계에 입문한 그는 김환기, 박수근, 박서보, 백남준, 이중섭 등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근현대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하고 후원하는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가 미술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미술품에 대한 높은 안목으로 다양한 미술품을 수집했던 그의 아버지(김영태 金永太)는 60-70년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민화에 관심을 갖고 민화를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킨 민화수집가 조자룡 선생의 후원자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중학교 재학 시절 우리나라 백자의 대가로 잘 알려진 도암 지순택 선생에게서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우며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에 입문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운명적이고 그냥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빠지지 않으면 결코 자기 일을 못합니다. 저 또한 가족들의 희생이 뒷받침 되었기에 사회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자신의 경험과 가치를 믿고 미술문화 발전에 힘써온 그는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백남준 작가가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의 한국 전시 회고전을 도왔던 김양수 대표는 백남준 작가로부터 자신을 모델로 한 비디오아트 설치작품을 받게 되었다.
"미스터 킴(Mr.Kim)이란 작품인데요, 일반인을 모델로 작품을 제작한 것은 제가 처음이에요."

백남준 선생이 김양수 대표에게 선물한 비디오 아트 작품, 미스터 김(Mr.Kim)과 김양수 대표

유연한 사고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우리 문화

지난 4월 17일(월)부터 4월 23일(일)까지 약 7일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트리엔날레 자개 테이블 전(Mother-of-Pearl Tables)'은 김양수 대표가 기획한 전시로 6명의 해외 디자이너들과 한국의 장인들이 협업해 전통공예인 자개 상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여 많은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이 전시를 위해 3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어요. 전통방식을 고수했던 통영의 나전장인들을 설득해 현대적인 요소를 더해 작품을 완성시키기까지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어요."
6명의 해외작가들과 협업한 자개 작품을 완성하는 데만 꼬박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나전공예품은 현지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전시기간 동안 1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자개는 빛과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어떤 색깔이라고 논할 수 없어요. 자연에서 온 천연의 빛깔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발전가능성이 많은 재료입니다."
우리 문화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시대에 걸맞게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양수 대표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문화가 지닌 특성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적극성을 발휘해 우리 문화가 지닌 잠재력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아버지 삶의 궤적을 따라

이 세상에 아버지의 겉모습을 그대로 닮은 아들은 많이 있지만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 인생을 사는 아들은 매우 드물다.
"제가 4남 1녀 중에 막내아들이에요. 아버지가 항상 하셨던 말씀이 너희들에게 유산은 안 남긴다는 말이었어요. 알아서 삶을 터득해 일구어 나가라는 말씀이셨죠."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그의 아버지는 인재양성을 한 것이라 생각된다. 자식이 주관을 갖고 앞날을 설계할 수 있도록 일부러 냉정한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삶에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부모님의 삶을 따라가는 경우는 없다. 부모님을 동경하지 않는다면, 닮고 싶지 않다면 어느 누가 단 한 번의 인생을 걸고 그 삶을 따를 수 있을까. 고미술에 관심을 갖고 우리 국보급 문화재를 되찾아오는데 많은 공을 들여 주위의 귀감을 샀던 그의 아버지(김영태)의 길을 따라 걷는 아들(김양수)의 존재만으로도, 아버지가 살아온 가치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총각시절, 침대를 다 없애고 방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살았어요. 그 이유가 이부자리 양쪽에 백자 달항아리를 놓고 그 녀석들을 바라보는 게 좋았거든요. 심지어 방안의 불도 약하게 해놓고 잤어요. 자다가 어렴풋이 눈을 뜨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 불빛을 머금은 달항아리를 바라보는 게 참 좋았거든요. 나는 집에서 수집한 미술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깨가 쏟아질 만큼 즐거워요."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자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를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진심으로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예술가에게 예술이 즐거움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진짜'라 할 수 없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즐기는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영혼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말해, 진정 즐길 줄 아는 자질이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한국 미술 시장의 개척자 김양수 대표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글_서주희 문화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