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국내 첫 회고전의 기억

비디오 때 · 비디오 땅
​1992년 7월

"1992년 백남준 선생님의 한국에서의 첫 회고전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었다.
백 선생님과의 관계는 회고전 이후 뉴욕 소호에서 한 집 걸러 옆 집으로 백 선생님이 스튜디오를 옮기신 후 돌아가실 때까지 인연이 지속되었다."


_두손갤러리 관장 김양수

《비디오 때·비디오 땅》,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 전경, 1992


뉴욕 미술계에서 한국인 김양수의 역할은 역시 백남준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촉매자다. 김양수는 서울대 미술대학 출신으로 한국에서 두손갤러리를 운영하던 사람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하여 '스페이스 언타이틀드'라는 화랑을 운영하였는데 백남준의 전시는 물론 도널드 저드 전시회 등의 전시를 기획하여 소호 일대의 미술계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인물이다. 김양수는 경기고등학교 출신이라는 백남준의 인연 때문에 백남준의 남다른 애정을 받고 있으며, 김양수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백남준의 '경기 따라지(Mr. Kim이라고도 불리는 로봇 작품)'라는 작품을 제작하기까지 하였다.
백남준과 김양수의 관계는 1990년 스위스 전시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남준의 취리히 쿤스트 하우스와 바젤 쿤스트 할레 전시에서 '파우스트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현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주제들, 이를테면 종교나 교육, 정치, 예술 등 13가지를 선정하여 조각작품을 제작하였는데 백남준의 한국 전시회를 유치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모두 사버린 인연이 있었다. 그로 인하여 백남준은 199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국내 회고전을 치르게 되었다.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남에게 하지 못한 아쉬운 이야기나 복잡한 이야기를 김양수를 통하여 해결해온 일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아마도 동족이라는 단순한 이유보다는 정서가 통하는 사람들끼리의 교류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_ 이용우 박사,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 열음사, 2000, p232-233

뉴욕 Space Untitled에서의 백남준 전시
백남준 선생님이 보내오신 작품 제목 《Elephant Installation》과 작품 가격이 적힌 메모


1990년, 그는 비디오 아트의 대가 고 백남준 선생을 만나게 된다. 백남준 선생의 작품전을 기획하며 김양수 대표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멘토인 백남준 선생과의 첫 만남은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였다.

"독일 어느 미술관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된 겁니다. 한국에도 이런 세계적인 작가가 있구나 싶어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

백남준 선생의 작품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어 백남준의 국내 전시를 하기로 결심했다.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 규모의 투자였다. 그 전시가 바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기념비적인 《비디오 때·비디오 땅》이다.

"회상해보면 백남준 선생님도 감회가 새롭고 또 심경도 복잡했을 겁니다. 고국을 떠나서 일본으로, 독일로 그리고 미국으로, 그렇게 이역만리에서 활동하시다가 3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대규모 회고전을 열게 되었으니까요. 당시 백남준 선생이 김포공항에서 도착해서 남긴 말은 지금도 충격으로 남아있지요. '예술은 사기야.' 파격적인 그의 행보를 상징하는 말이지요."

백남준 선생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김 대표는 뉴욕 소호에 에스프레소 바 겸 갤러리 스페이스 언타이틀드(Space Untitled)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도 백남준 선생이 김 대표의 갤러리 옆으로 스튜디오를 옮긴 것이다. 자연히 교류가 빈번해졌고 결국 의기투합하여 [New York Center for Media Art]라는 Media Art 전문 갤러리를 열게 됐다.

"백남준 선생님과 같이 해외 아티스트들과 소통하고 전시를 준비하며 글로벌 문화를 흡수했어요. 예술에 관하여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New York Center for Media Art(NYCMA)에서 처음 전시한 백남준 선생의 레이저 작품 《Laser Corn》
백남준 선생님께서 《Laser Corn》에 '김양수'라는 사인을 해주신 사진 작품


백남준 선생은 우정의 선물로 김 대표에게 특별히 제작된 로봇 작품을 주기도 했다.

"어느 날 백선생님 스튜디오에 갔더니 저를 비디오 조각으로 만들고 계셨어요.
'자네는 땅딸막한데다가 머리와 가슴에는 야한 생각 밖에 없잖아. 그래서 비디오는 플레이보이 모델 영상을 담아, 핑크색으로 칠했어.'
그리고는 그 로봇에 '경기도 따라지 김양수'라고 쓰셨죠."


_ 백가영 에디터, HAUTE, 2014년

백남준이 김양수 대표를 모델 삼아 만든 작품 "Mr.Kim". 브루클린 뮤지엄에 기증되었다.